[여의도풍향계] '양두구육'부터 '사필귀정'까지…사자성어 新 풍속도<br /><br />[앵커]<br /><br />여의도 정치권을 '사자성어'가 흔들고 있습니다.<br /><br />공세부터 신념의 표출까지, 국면의 변곡점마다 다양한 사자성어가 등장하고 있는데요.<br /><br />정치 현실의 단면을 압축해 보여주기도 합니다.<br /><br />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살펴봤습니다.<br /><br />[기자]<br /><br />'사자성어'. 교훈이나 유래를 담은, 옛사람들이 만든 네 글자 말인데요.<br /><br />압축적인 표현과 은유의 미(美)로, 일상에서도 자신의 처지나 심경을 표현할 때 종종 쓰이곤 합니다.<br /><br />특히 간결하고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수단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권에서 오래전부터 즐겨 사용돼 왔는데, 최근 들어 사자성어가 자주 정쟁의 한복판에 등장하고 있습니다.<br /><br />그 시작은 지난 6월, 6.1 지방선거 직후 벌어진 국민의힘 내홍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.<br /><br />발단은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놓고 '자기 정치'라고 비판한 5선 정진석 의원과 이 전 대표 간 신경전이었습니다.<br /><br />설전 끝에 정 의원이 내민 한 장의 사진은 '소이부답(笑而不答)'.<br /><br />'그저 웃을뿐 답하지 않는다'는 의미의 사자성어가 적힌 사진을 SNS에 올린 것입니다.<br /><br />확전을 자제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.<br /><br />꽤 오랜 시간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'양두구육(羊頭狗肉)'은 이 전 대표가 먼저 운을 띄웠습니다.<br /><br />이 전 대표는 지난 7월 SNS에 '그 섬에서는 앞에선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선 정상배들에게 개고기를 받아와 판다'고 적었습니다.<br /><br />이른바 '내부 총질' 문자 파동 다음 날이었는데, 윤석열 대통령을 빗댄 것이 아니냐는 당내 비판이 제기되며 논란을 낳았습니다.<br /><br />'양두구육'을 기점으로 이번에는 친윤계로 꼽히는 이철규 의원과 사자성어 논쟁이 벌어졌습니다.<br /><br />이 의원은 "'혹세무민(惑世誣民)'하며 세상을 어지럽히니 '앙천대소(仰天大笑)' 할 일"이라고 꼬집었는데요.<br /><br />이후에도 '달을 보고 짖는 개'라는 뜻의 '망월폐견(望月吠犬)'까지, 이 전 대표를 향한 비판을 이어갔습니다.<br /><br />내홍이 수면 위로 떠 오른 가운데, 조어도 등장했습니다.<br /><br />이 전 대표는 지난달 "'윤핵관'의 핵심은 2017년 대선에서 3명의 후보를 밀었던 '삼성가노(三姓家奴)'"라고 직격했습니다.<br /><br />'세 개의 성을 가진 종'이라는 뜻으로 소설 '삼국지'에 등장한 표현인데, 장제원 의원을 지칭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.<br /><br />이처럼 갈등이 심화하며 지난달 국민의힘 긴급 의원총회에선 이 전 대표의 추가 징계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.<br /><br /> "이준석 전 당 대표의 개고기, 양두구육, 신군부 발언 등 당원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언행에 대해 강력히 규탄, 경고하며 추가 징계에 대한 윤리위원회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합니다."<br /><br />이 전 대표는 대구 기자회견에서 작금의 상황과 새 비대위 설치를 위한 당헌 개정을 각각 '지록위마(指鹿爲馬)', '위인설법(爲人設法)' 등 사자성어에 빗대 응수했습니다.<br /><br /> "사자성어만 보면 흥분하는 우리 당의 의원들을 위해서 작금의 상황을 표현하자면 '지록위마'입니다."<br /><br />당 윤리위원회는 앞서 의원총회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.<br /><br />이달 말 전체 회의를 열어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안을 논의할 전망이어서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태입니다.<br /><br />마치 유행처럼 여의도에서 사자성어를 구사한 화법이 이어지고 있는데, 그 쓰임새도 다양합니다.<br /><br />나경원 전 의원은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을 경계하며 고사성어를 활용했습니다.<br /><br />민주당의 정권 흔들기에 허둥대거나 나 몰라라 한다면 '천장지제 궤자의혈(千丈之堤潰自蟻穴)'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는데요.<br /><br />중국 사상가 한비자의 '유로(喩老)편'에 담긴 말로 '천장 높이의 둑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진다'는 뜻입니다.<br /><br />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찾아 '중통외직(中通外直)'이라는 말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했습니다.<br /><br />속은 비어있지만 겉은 곧고 단단하다는 의미입니다.<br /><br />박 의원은 과거 법무부장관 퇴임식에서도 '군주민수(君舟民水)'에서 따 온 '검주민수'라는 말로 검찰개혁의 중요성을 전했습니다.<br /><br />'임금은 배요. 백성은 물'이라는 말을 '검찰은 배요.<br /><br />백성은 물'이라고 바꿔 표현했는데,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뒤집기도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.<br /><br />반면 같은 당 고민정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윤 대통령을 향해 '호가호위(狐假虎威) 하지 말라'고 해, 부적절한 비유로 지적받기도 했습니다.<br /><br />'호가호위'는 힘이 없는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린다는 뜻인데요.<br /><br />때문에 권력자인 대통령에 대해선 문맥에 맞지 않는 사자성어를 썼다는 것입니다.<br /><br />사자성어는 그 의미와 취지에 맞게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, 정치인들이 자신의 뜻을 알리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.<br /><br />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정치인들이 사자성어를 사랑해 온 이유입니다.<br /><br />이명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의 사자성어를 '시화연풍(時和年?)'이라고 발표했습니다.<br /><br />'나라가 태평하고 풍년이 든다'는 뜻으로 당시 기치로 내걸었던 '경제 대통령'의 이미지를 알리는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.<br /><br />사자성어를 즐겨 쓰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국민의힘 홍준표 대구시장을 꼽을 수 있는데요.<br /><br />지난 대선 과정,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를 '얼굴은 두껍고 마음은 검다'는 뜻의 '면후심흑(面厚心黑)'에 빗대는가 하면, 자신의 처지는 '일모도원(日暮途遠)'으로 압축했습니다.<br /><br />민주당 이재명 대표 역시 자신의 의지나 심경을 사자성어로 대변해왔습니다.<br /><br />친형 강제입원 등 의혹으로 경찰에 출석한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는 두 가지 사자성어로 입장을 밝혔습니다.<br /><br /> "인생사 다 새옹지마 아니겠습니까. 행정을 하는데 권한을 사적인 용도로 남용한 일이 없습니다. 사필귀정일 것이라고 믿습니다."<br /><br />사자성어는 아니지만, 정치적 위기 앞에 무협소설의 표현을 빌어 어떤 독도 뚫을 수 없다는 '만독불침(萬毒不侵)'이라는 말로 정면 돌파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.<br /><br />...